2001년 5월 29일 뉴스엔조이에 실린 글입니다.
화평교회의 가정교회 현장 리포트2
로렌스 콩의 FCBC와 또 다른 한국적 셀 모습 '인상적'
고양시 원당의 화평교회(최상태 목사)는 서른 여섯 개의 가정교회들로 이뤄진 매우 색다른 교회이다. 가정교회엔 평신도 목자에 해당하는 가장이 있고, 모든 구성원(가원)이 제각기 찬양 회계 총무 친교 등의 사역을 감당하며 '작은 교회'의 끈끈한 친밀감을 나눈다. 섬김가정교회는 이런 가정교회들 중 하나다. 이제 분가한지 10개월이 됐는데 또 분가를 생각해야 할 정도로 가원들이 늘었다. 김대선 집사(43)와 아내인 김정님 집사(43)가 가장과 가정총무를 맡고 있으며,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가원들의 가정을 순회하며 함께 모임을 갖는다.
기자들이 방문한 5월 17일 밤엔 가장인 김대선 집사의 가정에서 모였다. 가장 어른인 유화숙 집사(49)와, 곽성수(44) 곽애영(45) 부부가 다섯 살배기 딸과 함께 왔다. 박정자 씨(41), 류순옥 씨(38), 김선영 씨(37)도 남편이 직장일로 참석하지 못했다. 두 달 전 결혼한 문정재(31), 안현정 씨(26)와 아파트 미용실에서 일하다 초대받고 오늘로 세 번째 참석하는 황성순 씨(28)까지 모두 11명이 모였다.
8시, 각 가정에서 만들어 온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갖는다
김밥에 초밥, 된장국, 김치 몇 가지, 과일 등이 한 상 가득이다. 가장인 김대선 집사가 아내가 만든 초밥이 설익은 밥으로 만들어 제 맛이 아니다며 아내 대신 변명을 한다. 입담 좋은 곽성순 집사가 끼어 들어 "우리 나이에 맞는 밥이다"며 농으로 넘긴다. 전화벨이 울린다. 태서, 그러니까 김 집사의 맏아들(중2)이 다니는 학원에서 온 전화다. 태서가 학원에 안 왔다는 것이다. 곽 집사가 눈치를 채고 또 한 마디 덧붙였다. 곽 집사네도 태서와 같은 나이의 아들이 있다. "사춘기 아이들은 어떡하든 부모가 이해해 주는 게 최선"이라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다. 여기 저기서 한 마디씩 거들며 오늘날 청소년들의 문제는 그들에게 책임이 있지 않고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공동책임이라는데 공감한다.
8시 30분, 미리 준비한 찬양악보를 나눠 갖고 찬양부장의 인도에 따라 찬양을 한다
"내가 먼저 손내밀지 못하고, 내가 먼저 용서하지 못하고, 내가 먼저 웃음 주지 못하고, 이렇게 머뭇거리고 있네…", 이런 찬양이 끝났을 땐 누군가 "바로 내 얘기네" 라며 가사에 수긍한다. 교회에서 부를 때 눈물이 났다는 고백을 또 누군가 했다. 이야기 속에 이미 물기가 젖어 있다.
8시 50분, 지난주일 가족과 함께 예배드리는 날 행사를 보내며 느꼈던 감회를 나누기로 한다
아직 남편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유화숙 집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꼭 참석하기로 했던 순이 아버지가 그날 하필 일이 생겨 또 나 혼자 참석했어요. 다행히 딸더러 엄마랑 꼭 같이 교회 가야 한다며 다짐을 받아 주더라구요. 어쨌든 다음 가족 초청예배엔 꼭 같이 가기로 했으니 기도해 주세요."
"아이들과 예배를 함께 드린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언젠가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이란 찬송을 들으며 우리 집도 그렇게 되길 기도하며 차만 타면 이 찬송을 부르던 기억이 났어요. 이제 그렇게 된 우리 가정을 생각하니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눈물을 흘리며 정말 행복한 예배를 드렸어요. 누군가 선물로 준 컵에 새겨진 '하늘 아래 우리 집 같은 집이 또 있을까'란 글귀가 있는데, 정말 우리 집 같이 행복한 집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니까요."(류순옥 집사)
"저희는 그날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남편이 글쎄 저와 아이가 반바지 입고 교회 나선다고 꾸중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기분을 잡쳤죠. 그래서 교회에 가니 모두가 신경이 날카로울 수밖에요. 게다가 그러다 늦게 가니 네 식구가 함께 앉을 자리도 없더라구요. 결국 둘씩 따로 앉아서 가족초청 예배를 드렸잖아요."(곽애영 집사)
아내의 이야기에 계속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던 남편 곽성수 집사가 아내 얘기를 되받았다.
"글쎄 그러구 교회 갔더니 얼마나 우울한 지 아세요? 처음에는 그래도 6년을 신앙생활 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들인 노력이 겨우 이것밖에 안 되는가, 생각하니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는 또 가족들의 그런 모습 하나 이해 못하는 나 자신이 싫어지는 거예요."
남편 말 중간에 아내인 곽애영 집사가 말을 끊었다.
"전 몰랐어요. 그 때 전 남편은 화낼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화내는 건 당연하지만 남편은 그럴 이유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화를 낸지도 몰랐어요. 아 그랬네요. 전 그걸 몰랐지요. 그냥 예배 마치고 나오면서 웃고 그러면서 잊어버렸는데 그런 사정이 있었네요."
두 부부가 이렇게 화해에 이르기까지 다섯 살배기 딸은 여전히 제 혼자서 색종이를 만지며 가끔은 어른들 흉내를 내면서 바쁘게 놀고 있다. 누군가 "그러니까 집에서 서로들 대화를 많이 해야지"라며 어른다운 충고도 해준다. "가정교회가 이래서 좋아"라며 오늘 모임에 오길 잘했다는 격려도 나온다.
박정자 씨는 그날 처음 남편과 시어머니와 함께 예배에 참석했다. 시어머니를 껴안고 찬양을 할 때는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혼났다고 한다. 그는 "시어머니가 작년 병나셨을 때 돌아가시지 않은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랐다"며 예배 후 소풍도 갔다고 자랑했다.
신혼의 문정재 씨는 예배 후 아내를 내버려두고 축구를 했다는 말에 어른들로부터 다음에는 차라리 베드민턴을 치더라도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충고를 듣는다. 또 누군가는 "결혼이란 50%를 포기하는 거야"라고 거들어준다.
가장인 김대선 집사의 아내 김정님 총무 이야기는 모든 가원들에게 "역시 우리 가장님 집이다"는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저희는 양가 모두 부모님들이 안 계시잖아요. 그래서 어버이날에 교회에서 아들 딸 없이 혼자 사시는 권사님들을 찾아뵙고 카네이션을 달아 드렸어요. 그리고 아이들과 깊이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너희들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다 해보라고 했더니 이것 저것 많은 걸 불만으로 토로하더라구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부모랍시고, 이것도 못해주고, 저것도 못해주면서 언제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는 말만 했지 뭐예요. 얼마나 미안한지 아이들한테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했지요. 그런데 왜 눈물이 나는지. 그 날 이후 며칠을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아이들 문제라고 생각했던게 전부 내 문제이지 뭐예요. 그런데 신기하죠? 아이들이 바뀌더라구요. 엄마 아빠가 회개하니까 아이들이 바뀌어요. 사실 오늘만 해도 아까 태서가 학원에 안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안심이 돼요. 제 성격상 그전 같으면 오늘 예배가 진행되지 못할 정도였을 거예요. 그리고 어제는 지금까지 자기가 받은 것 가운데 가장 나쁜 성적을 받아왔어요. 그런데도 화를 내기보다 오히려 어이구, 이런 성적도 받아올 줄 아니, 이젠 내려갈 데가 없으니 올라갈 일 뿐이구나, 하며 도리어 안심을 시켜주게 되더라구요. 아이도 신기했겠죠? 우리 엄마 왜 이러나 했을 거예요. 우린 주일 예배가 끝나고 성묘를 갔어요. 남편도 그전처럼 아이들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해도 아이가 느낄 때까지 기다리더라구요. 그걸 보면서 얼마나 남편이 고마웠는지 몰라요."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들 박수를 보냈다. 남편인 김대선 집사가 아내의 말을 이어서 자신의 마음을 또 열었다.
사실 참 고민이었어요. 태서하고 관계가 너무 안 좋았거든요. 집에 오면 말 한 마디도 않았으니까요. 그러다 송길원 목사님이 얼마 전 우리 교회에 오셨을 때 [행복한 말 한 마디]라는 책을 한 권 소개해 주셨는데 거기서 제가 크게 깨달은 건 자녀들을 수용하는 관용의 이야기였어요. 거부는 쉬운데 수용은 어렵잖아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동안 내 아이에게도 깊은 생각 없이 내 입장에서 요구하고 수용하려 했던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많이 회개했지요. 그렇게 수용하려 하니 아이들이 바뀌는 겁니다. 오늘은 학원가기 전에 농담까지 했어요. 뭐 '여가 선용비'를 좀 달라더라구요. 그래서 거금 3000원을 받아선 오늘 학원도 안 가고 여가 선용하러 갔나 봐요. 사실 학원 안 갔다는 얘기 듣고도 아내처럼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잊어버리고 있었으니까요."
또 누군가 하나님이 우리 아이들을 통해서 우리를 판단하실 것이라며, 부모의 책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자 다시 김 집사는 아들을 통해 자신이 신앙의 성숙을 맛본다며 감사했다. 가정이란 무엇보다 참된 용서를 배우는 곳임을 느꼈다고도 했다. 그렇게 10시가 가까울 무렵 나눔의 시간이 마무리된다.
이제 기도제목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
오늘은 기도에 앞서 이 가정교회가 후원하고 있는 선교사로부터 온 선교편지를 읽기로 한다. 현장의 아픔을 느끼는 듯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간을 찌푸리며 편지내용을 경청한다. 가원들의 5월 기도제목이 담긴 유인물을 성경에서 꺼내고, 여기에 가족초청예배와 선교사의 기도제목 등을 보내서 20여분 기도를 한다. 그렇게 기도가 끝나면 거의 10시 30분이 된다.
헤어지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이 또 있다. 친교부장은 소풍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광고를 하고, 성경을 얼마나 읽었는지 검사도 한다. 그리고 찬양하며 헌금을 드리고 헌금기도를 하면 모든 모임이 끝난다.
섬김가정교회 목요모임에서 생각한 몇 가지
'아니 저러다 부부싸움 나지 않을까?' 솔직히 이런 염려까지 했다. 섬김 가정교회 안에서의 나눔은 이처럼 담을 느낄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있다. 그러나 이런 나눔 속에서의 긴장조차 부부관계를 보다 친밀하게 만들어주고, 자녀교육에도 바람직한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가정교회의 매력인 셈이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나눔이 피상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차츰 자신의 속 이야기를 쏟아내는 분위기로 들어가 이제는 전혀 어색하지 않게 됐다는 것.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이 이날 생략됨으로써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 작은 모임 속에서 참석자들은 전혀 새로운 교회를 경험하고 있다. 이런 친밀함이 결국 새로운 신자를 전도하는 데도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교회 예배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가정교회에는 참석하고 있는 황성순 씨의 경우가 그렇다. 제각기 은사에 따라 사역분야를 가지고 자신의 일로 해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여기 전임교역자가 아무도 없지만 전혀 어색함 없이 진행되고 그 속에서 기쁨을 맛본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편지를 함께 읽으며 현장의 느낌을 공유하는 모습은 '미전도 종족입양운동'을 통해 새로운 선교에 접근하려는 본질을 꿰뚫고 있어 더욱 보기 좋다. 로렌스 콩의 싱가포르 FCBC(신앙공동체침례교회)에서 보았던 셀과 또 다른 한국적 셀을 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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